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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계보 8회 · 아브라함 ① 부르심 — 목적지가 적히지 않은 명령

본문: 창세기 12:1-9 (배경 창세기 12-15장)

이 회의 낱말 · 렉-레카(לֶךְ־לְךָ) — 「너는 가라」. 굳이 「너를 위하여」를 붙인 명령형이다

들어가며 — 어디로 가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앞 회에서 데라는 목적지를 알고도 하란에 멈췄습니다. 이번 회에서 그의 아들은 목적지를 모른 채 떠납니다. 명령의 첫마디부터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창 12:1

떠날 곳은 셋이나 이름이 붙습니다 —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 버리는 것은 점점 좁아지고 점점 아픕니다. 그런데 갈 곳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 한마디뿐입니다. 지명이 없습니다.

1. 복을 받으라가 아니라 복이 되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창 12:2-3

이 짧은 약속에 「복」이 다섯 번 나옵니다. 그런데 방향을 보십시오. 앞의 셋은 아브람에게 오는 복이고, 마지막은 그를 통해 나가는 복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이것이 이 계보 전체의 설계도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택하셔서 그 한 사람에게 가두려 하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통로로 삼아 모든 족속에게 흐르게 하려 하셨습니다. 선택은 울타리가 아니라 수로였습니다.

2. 나이 일흔다섯에 시작된 순종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 12:4)

성경은 그의 순종을 미화하지 않고 나이를 적습니다. 인생을 새로 시작할 나이가 아닙니다. 그리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라는 한마디가 붙습니다 — 아버지가 데려왔던 조카를, 이제 아브람이 데리고 갑니다.

도착한 뒤 그가 한 일은 제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창 12:7). 땅은 아직 그의 것이 아니었고 약속만 있었는데, 그는 남의 땅 한복판에 예배의 표를 세웁니다. 소유하기 전에 예배한 것입니다.

다만 성경은 그 직후의 실패도 감추지 않습니다. 기근이 들자 그는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갑니다(창 12:10).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굶주림 앞에서는 흔들렸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호칭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3. 동시대 조명 — 눈을 든 사람과 눈을 든 사람

목자들이 다투자 아브람이 먼저 입을 엽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창 13:8-9

약속을 받은 사람은 그였고 나이가 위인 것도 그였습니다. 먼저 고를 권리가 있었는데 조카에게 넘깁니다. 약속을 가진 사람이 굳이 좋은 자리를 다투지 않는다 — 이것이 이 장면의 뜻입니다.

의 반응이 나란히 놓입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 13:10)

그가 본 것은 물이 넉넉한 땅이었고, 성경은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보이는 것으로 골랐고, 보이지 않는 것은 계산에 없었습니다. 롯의 선택은 죄가 아니라 시야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멜기세덱이 나타납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 창 14:18-20

이름도 족보도 배경도 없이 살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등장해 떡과 포도주로 아브람을 축복하고 사라집니다. 아브람은 십일조를 바칩니다 — 약속을 받은 자가 이 사람 앞에서는 받는 자리에 섭니다. 히브리서가 이 짧은 장면을 붙들어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설명하게 됩니다.

4. 의로 여기심 — 계보가 서는 자리

자식이 없다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은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창 15:5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가장 무거운 한 절이 이어집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창 15:6

「믿으니…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이 한 일은 별을 센 것도 아니고 무엇을 이룬 것도 아닙니다. 믿었을 뿐입니다. 바울은 이 한 절 위에 이신칭의를 세웁니다.

주목할 것은 이 선언이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왔다는 점입니다. 성취를 보고 믿은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믿었고 그것이 의로 셈해졌습니다.

5. 그리스도를 향하여 — 갈 바를 모르고 걷는 믿음

같은 날 하나님은 그에게 어두운 예고도 주십니다.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사백 년 동안 괴로움을 당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창 15:13). 약속에는 종살이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부르심은 형통의 보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걸었습니다.

히브리서가 그것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 요약했고(히 11:8), 바울은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으리라」를 미리 전한 복음이라 부릅니다(갈 3:8). 즉 아브람이 받은 것은 땅에 관한 약속이기 전에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이었습니다.

계보의 끝에 서신 분도 아버지의 집을 떠나 목적지가 적히지 않은 길을 걸으셨습니다. 다만 그분이 도착한 곳은 땅이 아니라 십자가였습니다.

이번 회의 자리

연표에서 아브라함의 띠는 보이지 않습니다. 창세기 5장과 11장의 반복 문형이 데라에게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 문형은 「몇 세에 낳고 몇 년을 더 살고 죽었더라」였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성경은 나이의 목록을 그만두고 한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니 연표의 마지막 띠인 데라 옆에서 이 회를 읽으십시오. 아버지가 멈춘 그 자리에서 아들이 다시 출발합니다.

묵상 질문

  • 관찰: 창세기 12:1에서 떠나라고 하신 것은 몇 가지이고, 가라고 하신 곳은 어떻게 표현됩니까?
  • 해석: 아브람이 롯에게 먼저 고르게 한 것과, 롯이 「눈을 들어」 고른 것은 각각 무엇을 근거로 한 선택이었습니까?
  • 적용: 저는 목적지가 적힌 길만 걸으려 하지는 않습니까? 지금 제게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처럼 이름 없이 주어진 다음 걸음은 무엇입니까?

다음 회 예고

9회 — 아브라함 ② 시험: 기다림의 광야에서 모리아까지

약속은 받았는데 아들은 없습니다. 기다림이 십 년을 넘기자 집안은 지름길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지름길에서 태어난 아이와, 마침내 약속으로 태어난 아이가 한 집에 있게 됩니다.


성구 인용은 개역개정이며 본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직접 가져왔습니다. 연표와 가계도는 창세기 5·11장의 나이를 계산해 그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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