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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바벨론·애굽 세력 관계와 이스라엘 외교사

앗수르·바벨론·애굽 세력 관계와 이스라엘 외교사

1단계: 앗수르 제국 전성기 (주전 8세기 중반~주전 7세기 중반)

국제 정세

  • 앗수르 제국의 부상: 디글랏빌레셀 3세(주전 745-727년)가 진정한 제국을 창건
    • 보병 170만, 기병 20만, 전차 1,600대의 가공할 군사력
    • 극도로 잔혹한 통치: 생가죽 벗기기, 말뚝 박기 등
    • 영토: 아르메니아에서 애굽까지, 에게해에서 아라비아해까지
  • 애굽: 상대적으로 약세, 앗수르의 압박 받음
  • 바벨론: 앗수르의 지배 하에 있음

북이스라엘의 외교 정책

1) 친앗수르 노선 (므나헴 왕)

  • 다메섹의 르신과 블레셋이 반앗수르 동맹 결성 시도
  • 므나헴은 동맹 거부, 앗수르에 조공 바침
  • 결과: 왕권 유지했으나 막대한 경제적 부담

2) 반앗수르 노선 (베가 왕, 주전 735년경)

  • 므나헴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이 베가 옹립
  • 아람-이스라엘 동맹 결성:
    • 다메섹의 르신(아람)과 동맹
    • 블레셋, 에돔도 합세
    • 남유다도 참여 요구 → 거절
  • 시리아-에브라임 전쟁 (주전 735년):
    • 남유다의 아하스 왕을 압박하여 동맹 강제 가입 시도
    • 예루살렘 포위 공격

3) 남유다 아하스의 친앗수르 정책

  • 동맹군의 압박에 아하스가 앗수르에 구원 요청
  • 디글랏빌레셀이 남하하여 다메섹 정복 (주전 732년)
  • 북이스라엘도 큰 타격, 영토 대부분 상실
  • 결과: 남유다는 앗수르 속국이 되었으나 왕국 유지

4) 북이스라엘 멸망 (주전 722년)

  • 마지막 왕 호세아가 애굽과 내통하여 앗수르 배반
  •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와 사르곤 2세가 침공
  • 수도 사마리아 3년 포위 끝에 함락
  • 백성들 사방으로 강제 이주, 이방인 이주민과 혼혈 → 사마리아인 형성

2단계: 앗수르 쇠퇴와 바벨론 부상 (주전 7세기 말, 주전 650-600년)

국제 정세 대변동

앗수르의 급속한 쇠퇴

  • 주전 612년: 수도 니느웨 함락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
  • 주전 610년: 하란 함락
  • 주전 609년: 갈그미스에서 최후 저항 시도

바벨론(신바빌로니아)의 급부상

  • 나보폴라살과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갈대아인(신바빌로니아)
  • 메대(메디아)와 동맹하여 앗수르 멸망시킴

애굽의 야심

  • 제26왕조 네카우 2세(바로 느고, 주전 610-595년)
  • 앗수르 쇠퇴를 기회로 시리아-팔레스타인 지배 시도
  • 역설적으로 앗수르를 도우려 북상 (바벨론 견제 목적)

남유다의 외교 정책

1) 요시야 왕의 반애굽 정책 (주전 609년)

  • 앗수르 쇠퇴로 남유다가 독립적 지위 회복
  • 므깃도 전투:
    • 애굽 왕 네카우 2세가 갈그미스로 북상 중
    •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애굽군 저지 시도
    • 추측: 바벨론의 비공식 동맹국이었거나 독자 행동
    • 동기: 애굽-앗수르 연합군 승리 시 애굽 지배 우려
  • 결과: 요시야 전사, 남유다 애굽 속국으로 전락

2) 갈그미스 전투 (주전 605년) – 패권 교체의 결정적 순간

  • 애굽 군대 vs 바벨론 느부갓네살
  • 바벨론의 압도적 승리
  • 결과: 근동 패권이 애굽에서 바벨론으로 완전 이동

3단계: 바벨론 제국 전성기 (주전 605-586년)

국제 정세

  • 바벨론: 느부갓네살 시대 최고 전성기
  • 애굽: 패권 상실, 시리아-팔레스타인 영향력 소멸
  • 남유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 투쟁

남유다의 혼란스러운 외교 (주전 609-586년)

여호아하스 (주전 609년, 3개월)

  • 요시야 전사 후 백성들이 옹립
  • 애굽 왕 네카우 2세가 폐위시키고 애굽으로 끌고 감
  • 완전한 애굽의 꼭두각시 시기

여호야김 (주전 608-598년, 11년)

1차: 강제적 친애굽 노선 (주전 608-605년)

  • 애굽 왕이 직접 옹립 (형 여호아하스 폐위 후)
  • 막대한 조공을 애굽에 바침
  • 백성 수탈하여 조공 마련

2차: 강제적 친바벨론 노선 (주전 605-601년)

  • 갈그미스 전투 후 바벨론이 예루살렘 침공
  • 1차 포로 사건 (주전 605년): 다니엘과 세 친구 포함
  • 성전 기구 약탈
  • 여호야김, 바벨론에 3년간 조공

3차: 친애굽 배반 (주전 601년)

  • 주전 601년 애굽-바벨론 전투 무승부
  • 여호야김이 바벨론 약화로 오판
  •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고 무시
  • 바벨론 배반, 다시 애굽과 내통

4차: 굴욕과 비참한 최후 (주전 598년)

  • 느부갓네살 재침공
  • 여호야김 전투 중 전사
  • 이 배반이 남유다 멸망의 직접 원인 제공

여호야긴 (주전 598-597년, 3개월)

  • 여호야김 전사 후 백성들이 옹립
  • 느부갓네살이 직접 예루살렘 포위
  • 즉시 항복
  • 2차 포로 사건 (주전 597년 2월): 에스겔 선지자 포함, 왕족과 귀족 대거 포로
  • 바벨론으로 끌려감 (석 달 만에 폐위)

시드기야 (주전 597-586년, 11년) – 마지막 왕

1차: 친바벨론 노선 (주전 597-589년)

  • 느부갓네살이 직접 옹립한 괴뢰 왕
  • 바벨론 충성 맹세

2차: 최후의 배반 (주전 589년)

  • 다시 애굽과 내통
  • 바벨론에 대한 반역
  • 예레미야의 거듭된 경고 무시

3차: 남유다 완전 멸망 (주전 586년)

  • 느부갓네살 3차 침공
  • 예루살렘 18개월 포위
  • 주전 586년 7월: 예루살렘 함락
  • 성전과 성벽 완전 파괴
  • 시드기야: 아들들이 눈앞에서 살해당한 후 두 눈이 뽑힘
  • 3차 포로 사건: 대부분의 백성이 바벨론으로 강제 이주
  • 남유다 왕국 완전 소멸

종합 분석: 이스라엘 외교 정책의 특징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줄서기와 배반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내부 분열과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하는 태도가 겹치면서 판단은 더 흐려졌다. 그 결과 외교의 일관성과 신의(信義)가 무너져 주변 강대국의 신뢰를 잃었고, 결국 그 신뢰 상실이 국가적 붕괴와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교훈을 준다.

1. 작은 왕국의 생존 딜레마

  • 강대국 사이에 낀 지정학적 위치
  • 독립 유지 불가능, 누구의 속국이 될지 선택만 가능

2. 기회주의적 외교의 반복

  • 강자에게 줄 대기
  • 약화 조짐 보이면 즉시 배반
  • 국제 정세 오판 반복

3. 친애굽 vs 친바벨론 파벌 갈등

  • 남유다 내부에 친애굽 세력과 친바벨론 세력 상존
  • 왕권이 불안정하면 정책이 계속 뒤바뀜
  • 일관성 없는 외교가 신뢰 상실 초래

4. 선지자들의 경고 무시

  • 이사야, 예레미야 등 선지자들의 일관된 경고
  •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 도구, 순복하라”
  • 왕들과 지도자들이 정치적 계산만 앞세워 무시

5. 영적 타락과 외교 실패의 연결

  • 우상 숭배 → 영적 분별력 상실 → 국제 정세 오판
  • 하나님 의지 대신 강대국 의지
  • 결국 두 왕국 모두 멸망

6. 역사적 교훈

  • 북이스라엘: 반앗수르 동맹 실패 → 주전 722년 멸망
  • 남유다: 반복적 배반과 신뢰 상실 → 주전 586년 멸망
  • 작은 나라의 외교는 신의(信義)가 생명임을 역설적으로 증명

연대기 요약

연도사건강대국 관계이스라엘 외교
주전 745디글랏빌레셀 3세 즉위앗수르 제국 전성기 시작
주전 735시리아-에브라임 전쟁앗수르 절대 강자북이스라엘 반앗수르 동맹 / 남유다 친앗수르
주전 722북이스라엘 멸망앗수르 전성기호세아의 친애굽 배반 실패
주전 612니느웨 함락앗수르 멸망남유다 독립 회복
주전 609므깃도 전투앗수르 최후 저항요시야의 반애굽 정책, 전사
주전 605갈그미스 전투바벨론 패권 확립1차 포로 (다니엘)
주전 601애굽-바벨론 전투 무승부일시적 세력 균형여호야김 배반 결정
주전 598바벨론 재침공바벨론 재확립여호야김 전사
주전 5972차 포로바벨론 완전 지배여호야긴 항복 (2차 포로)
주전 586예루살렘 함락바벨론 승리남유다 멸망 (3차 포로)
주전 539바벨론 멸망페르시아(바사) 패권고레스 칙령으로 귀환 시작

이 역사는 작은 민족이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그리고 영적 분별력과 정치적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비극적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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