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22:1-14 (배경 창세기 16-22장)
이 회의 낱말 · 여호와 이레(יְהָוָה יִרְאֶה) — 「여호와께서 보신다」. 준비하신다는 뜻은 보신다는 말에서 나온다
들어가며 — 약속과 성취 사이가 너무 길었습니다
일흔다섯에 부르심을 받았고, 아들은 백 세에 태어납니다. 그 사이 스물다섯 해가 이 회의 무대입니다. 성경은 그 세월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이 집안이 무엇을 했는지 정직하게 적어 둡니다.
1. 지름길 — 기다리다 지친 집안의 계산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 창 16:1-2
눈여겨볼 것은 이것이 불신앙의 언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래는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하나님을 언급하며 말합니다. 하나님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방법으로 돕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가 이어집니다. 1회의 아담처럼, 말을 들었고 말리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곱바로 집안의 파괴로 나타납니다. 임신한 종이 여주인을 머시하고(창 16:4), 여주인은 종을 학대합니다. 지름길은 시간을 줄여 주지 않았습니다. 상처를 늘렸을 뿐입니다.
2. 동시대 조명 — 쪻겨난 여자가 본 하나님
여기서 성경은 뜻밖의 일을 합니다. 약속의 부부가 아니라 도망친 여종을 따라갑니다.
하갈은 애굽 여인이고 종이며, 이 집안의 계산에 도구로 쓰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그녀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고, 그녀는 성경에서 하나님께 이름을 붙인 첫 사람이 됩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뒐었는고 함이라 — 창 16:13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아무도 보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이 보고 계셨다는 고백입니다. 계보 밖으로 밀려난 사람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가신 것입니다.
이스마엘도 버려지지 않습니다. 훗날 이삭이 태어나고 두 아이가 한 집에 있게 되자 결국 갈라서게 되는데(창 21:10), 그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창 21:17).
계보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돌봄 밖에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3. 이름이 바뀌는 자리
지름길을 낸 지 십삼 년이 지나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십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 창 17:1
구십구 세. 사람으로서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나이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소개하십니다. 사람의 가능성이 끝난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새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름을 바꾸십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창 17:5)
아직 아들이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주십니다. 이름이 현실을 앞서갑니다. 그는 이제 불릴 때마다 아직 오지 않은 약속을 발음하게 됩니다.
사라가 웃었을 때 주어진 대답도 같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 18:14). 그리고 마침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창 21:1)
「말씀하신 대로」가 거듭 반복됩니다. 스물다섯 해의 기다림 끝에 성경이 고른 표현이 그것이었습니다.
4. 모리아 — 받은 것을 돌려 드리라는 명령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창 22:1-2
명령이 잔인할 만큼 정확합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 네 겹으로 조여 옵니다. 이 아들은 그가 만들어 낸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아들입니다. 기다려서 받은 것을 다시 내놓으라는 요구였습니다.
산으로 오르며 이삭이 어린 양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아버지의 대답이 이 회의 중심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 창 22:8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는 알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채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준비된 숫양을 본 뒤 그 땅의 이름을 짓습니다.
그 이름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창 22:14). 뜻은 「여호와께서 보신다」입니다. 준비하신다는 뜻이 보신다는 말에서 나옵니다. 하갈이 광야에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부른 것과 같은 뿌리입니다. 쪻겨난 여자와 시험받는 아버지가 같은 하나님을 다른 자리에서 만난 것입니다.
5. 그리스도를 향하여 —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아버지
히브리서는 그가 무엇을 생각하며 걸었는지 밝힙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그의 순종은 체념이 아니라 부활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약속과 명령이 충돌할 때 그는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실 방법을 아신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모리아에서 아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대신 숫양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같은 산지에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아버지가 계셨고 그 아들에게는 대신할 숫양이 없었습니다.
모리아는 질문을 하나 남겨 두고 끝납니다.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답이 오기까지 이 연재는 계속 걷습니다.
이번 회의 자리
연표의 마지막 띠는 여전히 데라입니다. 창세기 11장의 나이 문형이 그에게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이제 숫자의 목록이 아니라 사건의 연속으로 기록됩니다 — 부르심, 애굽, 갈라섬, 언약, 지름길, 이름의 변경, 아들, 모리아.
다만 성경은 나이를 세 번 짚습니다. 부를 때 칠십오 세, 이름을 바꾸실 때 구십구 세, 이삭이 태어날 때 백 세(창 21:5). 하나님이 늦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급했습니다.
묵상 질문
- 관찰: 창세기 16:2에서 사래의 말에 하나님이 어떻게 언급됩니까? 그 말이 불신앙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해석: 하갈이 부른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지은 「여호와 이레」는 같은 뿌리의 말입니다. 두 자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 적용: 제가 지금 하나님의 약속을 「돕겠다」고 내고 있는 지름길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받은 것 가운데 돌려 드리기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다음 회 예고
10회 — 이삭: 조용한 계승자
모리아에서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올랐던 아들이 이제 계보를 이어받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기록은 유난히 조용합니다. 아버지가 팔던 우물을 다시 파고, 다투면 물러나고, 또 팽니다. 요란하지 않은 계승의 모습을 봅니다.
성구 인용은 개역개정이며 본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직접 가져왔습니다. 연표와 가계도는 창세기 5·11장의 나이를 계산해 그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