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한눈에
- 구약의 하나님 이름은 고유명사 하나(여호와)와 여러 칭호로 나뉩니다.
- 칭호 대부분은 교리로 선언된 것이 아니라 일이 벌어진 자리에서 붙여졌습니다.
- 그러므로 이름을 알려면 그 이름이 처음 불린 상황을 보아야 합니다.
- 이름이 많아도 한 분입니다 —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4).
1. 기본이 되는 두 이름
엘로힘 — 「하나님」
성경의 첫 문장에 나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창 1:1
히브리어 엘로힘(אֱלֹהִים)은 형태가 복수인데 동사는 단수를 받습니다. 셋 이상을 뜻하는 복수가 아니라 위엄과 충만을 나타내는 복수로 읽습니다.
일반명사여서 이방 신들에게도 쓰입니다. 그러므로 이 낱말만으로는 누구의 하나님인지가 정해지지 않습니다.
여호와 — 고유한 이름
구약에서 고유명사는 이것 하나입니다. 모세가 이름을 묻자 받은 대답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 출 3:14
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אֶהְיֶה אֲשֶׁר אֶהְיֶה), 「나는 ~이다」의 반복입니다. 존재의 근거를 자기 밖에 두지 않는 분이라는 뜻으로 읽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못 박으십니다.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 출 3:15
왜 「여호와」로 읽는가. 유대인들은 네 글자(יהוה)를 거룩히 여겨 소리내지 않고 아도나이(주)로 바꿔 읽었습니다. 뒷날 자음 본문에 모음을 붙일 때 아도나이의 모음을 얹어 적은 것이 라틴어를 거쳐 「여호와」가 되었습니다. 학계는 원래 발음을 「야웨」로 추정합니다. 칠십인역이 이를 κύριος(주)로 옮긴 것이 신약의 「주」로 이어집니다.
출애굽기 6:3 — 갈리는 대목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 출 6:3
그런데 창세기는 족장들이 이미 「여호와」를 불렀다고 적습니다. 이름을 몰랐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이름이 가리키는 바(언약을 지키시는 구원자)를 아직 경험으로 알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는 견해가 널리 쓰입니다. 다만 이 구절은 해석이 갈리는 자리이므로 이 문서는 한쪽으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2. 엘 계열 — 족장들이 만난 자리마다
| 이름 | 뜻 | 본문 | 그때의 상황 |
| 엘 샤다이 | 전능한 하나님 | 창 17:1 | 아브람 99세, 할례 언약 직전 |
| 엘 엘욘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창 14:18 |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하며 |
| 엘 로이 |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 창 16:13 | 쫓겨난 여종 하갈이 지음 |
| 엘 올람 | 영원하신 하나님 | 창 21:33 |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
몸이 죽은 것 같은 때에 「전능」이 나옵니다. 아브람이 아흔아홉이 되었을 때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 창 17:1
하갈의 이름이 특별합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이름을 지어 드린 거의 유일한 자리이고, 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도 본처도 아닌 쫓겨난 애굽 여종입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 창 16:13
3. 여호와에 한 낱말을 붙인 이름 — 사건이 이름이 됩니다
이 이름들은 대부분 제단이나 땅 이름입니다. 교리가 아니라 겪은 일에서 나왔습니다.
| 이름 | 뜻 | 본문 | 그때 무슨 일이 |
| 여호와 이레 | 준비하시는 | 창 22:14 | 모리아에서 숫양이 걸려 있던 날 |
| 여호와 닛시 | 나의 깃발 | 출 17:15 |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의 손이 들린 날 |
| 여호와 살롬 | 평강 | 삿 6:24 | 기드온이 죽을 줄 알고 두려워한 뒤 |
| 여호와삼마 | 거기 계시다 | 겔 48:35 | 회복된 성읍의 이름 |
| 여호와 우리의 공의 | 치드케누 | 렘 23:6 | 의로운 가지를 말하는 자리 |
치료하시는 분이라는 이름도 같은 방식으로 나옵니다. 마라의 쓴 물이 단 물이 된 뒤입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 출 15:26
에스겔서의 마지막 낱말이 「여호와삼마」(겔 48:35)입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백성이 끌려간 책이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로 끝납니다(겔 48:35).
음역형에 주의할 것
‘여호와 라파’·’여호와 로이’ 같은 음역은 널리 쓰이지만 개역개정 본문에는 그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풀어 씁니다. 본문에 음역이 그대로 있는 것은 이레 · 닛시 · 살롬 · 삼마 넷이고, 개역개정은 ‘샬롬’이 아니라 「여호와 살롬」(삿 6:24)으로 적습니다.
4. 칭호로 쓰인 이름
| 칭호 | 본문 | 눈여겨볼 것 |
| 만군의 여호와 | 삼상 1:3 | 처음 나오는 자리가 전쟁터가 아니라 실로의 예배입니다 |
|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 사 6:3 등 | 두 표기를 합쳐 29절 중 26절이 이사야입니다 |
| 질투의 하나님 | 출 34:14 | 질투가 이름으로 불립니다 |
| 나의 목자 | 시 23:1 |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 출 34:1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시 23:1
5. 족장마다 다르게 불렸습니다
한 집안 안에서도 부르는 말이 달랐습니다.
| 누가 | 어떻게 | 본문 |
| 아브라함 | 아브라함의 하나님 | 창 31:42 |
| 이삭 | 이삭이 경외하는 이 | 창 31:42 |
| 야곱 |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 | 창 49:24 |
이삭의 것이 특이합니다 — 두려움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에서 이 셋이 하나로 묶입니다.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 출 3:15
각자 다른 자리에서 만난 하나님이 같은 분이라는 선언입니다.
6. 조금 더 깊이 (개혁주의 관점)
이름이 여럿인 것을 신이 여럿인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쉐마가 못을 박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 신 6:4
여러 이름은 한 분을 만난 여러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대개 낮은 자리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엘 로이는 광야로 쫓겨난 여종이, 여호와 이레는 아들을 바치러 올라간 아버지가, 여호와 살롬은 두려워 떨던 사사가 붙였습니다.
이름은 선언이 아니라 증언이었습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뜻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그 이름이 붙은 자리에 서 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전처럼 모아 두지 않고, 사건마다 흩어 놓았습니다.
7. 자주 하는 질문·오해
「여호와」가 맞습니까, 「야웨」가 맞습니까. 원래 발음은 「야웨」로 추정하지만 확정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는 아도나이의 모음을 얹어 읽은 데서 온 관용이고, 한국 교회가 오래 써 온 표기입니다. 어느 쪽도 그분을 가리키는 데 모자라지 않습니다.
이름을 부르면 안 됩니까. 구약은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을 금합니다(십계명 제3계명). 부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쓰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름이 많으니 신도 여럿입니까. 아닙니다. 신 6:4가 정면으로 답합니다. 엘로힘이 복수형인 것도 같은 이유로 다신론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관련 개념
- 삼위일체 — 한 분 하나님과 세 위격
- 언약 — 「여호와」라는 이름이 가장 깊이 걸려 있는 자리
- 구속사 ·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