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 지파 — 저주가 사명이 되기까지
지파 시리즈 2편입니다. 1편 단 지파와 정확히 반대 방향의 이야기입니다. 단은 두 번째로 컸다가 마지막 명단에서 지워졌고, 레위는 저주를 받고 땅도 받지 못했는데 마지막 명단에 들어 있습니다.
1. 이름 — 연합
레위는 레아의 셋째 아들입니다.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창 29:34)
이름은 연합하다·붙다(לָוָה)에서 왔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한 레아가 아들 셋째를 낳으며 ‘이제는 붙어 있겠지’라고 한 말입니다. 사람에게 붙기를 바라며 지은 이름인데, 이 지파는 결국 다른 분께 붙은 지파가 됩니다.
2. 받은 말 — 저주와 축복이 정면으로 부딪힙니다
이 지파는 성경 안에서 가장 크게 엇갈리는 두 말을 받습니다.
야곱의 말은 저주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창 49:5·7)
모세의 말은 축복이고, 지파들 가운데 손꼽히게 깁니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신 33:10)
같은 지파에 대한 말입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이 편의 내용입니다.
3. 걸어간 길 — 두 번 칼을 듭니다
첫 번째 칼 — 세겜 (창 34장)
누이 디나의 일로 시므온과 레위가 성읍을 기습합니다.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창 34:25)
야곱의 저주가 가리키는 것이 이 일입니다. 「그들의 분노대로」(창 49:6) 한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칼 — 금송아지 (출 32장)
시내산 아래에서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춤출 때, 모세가 진 문에 섭니다.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출 32:26)
그리고 그들은 다시 칼을 듭니다. 이번에는 친족을 향해서입니다. 모세가 그 일을 이렇게 부릅니다.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출 32:29)
같은 행동인데 한 번은 저주가 되고 한 번은 헌신이 됩니다. 칼을 들어 친족을 친 것은 같습니다. 다른 것은 누구의 말에 따라 들었느냐입니다. 세겜에서는 자기 분노대로였고, 시내산에서는 여호와의 말씀대로였습니다.
모세의 축복이 그 일을 그대로 되짚습니다 —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신 33:9).
세 번째 — 비느하스 (민 25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브올의 일에서 나섰을 때 받은 말이 이것입니다.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민 25:13)
4. 어긋난 자리 —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졌는데
야곱은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7) 했습니다. 그 말은 글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흩어진 결과가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안에 골고루 흩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온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신 33:10). 벌로 주어진 흩어짐이 사명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땅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레위는 그의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신 10:9)
가진 것이 없는 지파가 가장 큰 것을 기업으로 받은 지파로 불립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맏이를 대신하는 자리에 섭니다 — 「레위인은 내 것이라」(민 3:12).
형 시므온과 비교됩니다. 같은 저주를 받았는데 시므온은 유다 안으로 흡수됩니다 — 「그들의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라」(수 19:1). 둘 다 흩어졌으나, 한쪽은 흡수되어 흐려지고 한쪽은 흩어져 섬깁니다.
5. 마지막 명단
에스겔 — 몫을 받습니다
땅을 받지 못했던 지파가 회복된 땅에서는 구역을 받습니다.
제사장의 경계선을 따라 레위 사람의 몫을 주되 (겔 48:13)
그리고 그 땅은 팔 수도 바꿀 수도 없습니다. 「이는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라」 (겔 48:14).
요한계시록 — 들어 있습니다
계 7:5-8의 열두 이름 가운데 레위가 있습니다. 이것이 그 명단의 이상한 점 중 하나입니다. 땅을 나누는 지파 명단에는 레위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1편에서 본 것과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됩니다.
큰 쪽이 사라지고 없던 쪽이 남습니다.
6. 이 문서의 정리
- 저주의 말이 취소된 것이 아닙니다. 그대로 이루어졌는데 뜻이 바뀌었습니다.
흩어짐은 흩어짐이었고, 땅 없음은 땅 없음이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벌이 아니라 자리가 되었습니다.
- 갈림길은 행동이 아니라 순종이었습니다. 같은 칼을 두 번 들었는데, 자기 분노로
든 칼은 저주가 되었고 말씀으로 든 칼은 헌신이 되었습니다.
- 그러므로 레위의 회복은 레위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지파를 쓰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말라기가 뒷날 그 언약을 되짚습니다 —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말 2:5).
7. 남는 물음
- 시므온은 왜 흡수되었는가. 같은 저주를 받았고 같이 흩어졌는데, 레위는 섬기는
자리를 얻고 시므온은 유다 안으로 사라집니다(수 19:1). 본문은 그 차이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금송아지 때 시므온이 어디 있었는지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 말라기의 책망을 어떻게 놓을 것인가. 말 2장은 레위의 언약을 말하면서 동시에
그 후손이 언약을 깨뜨렸다고 책망합니다. 회복된 지파도 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레위의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만 읽으면 이 대목이 남습니다.
- 땅 없음을 오늘 어떻게 읽는가.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신 10:9)를 소유의 포기로 읽을
것인지, 그 지파에게만 주어진 특수한 부르심으로 읽을 것인지에 따라 적용이 갈립니다.
성구는 개역개정이며 본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직접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