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우벤 지파

르우벤 지파 — 장자의 명분을 잃고도 남은 이름

지파 시리즈 4편입니다. 3편 유다 지파가 ‘넷째가 어떻게 맨 앞에 섰는가’였다면, 이 편은 그 자리를 내준 쪽을 봅니다.

1. 이름 — 보라, 아들이라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창 29:32)

이름은 ‘보라(רְאוּ) 아들(בֵּן)’로 읽힙니다. 사랑받지 못하던 아내가 아들을 보이며 남편의 마음을 얻으려 한 이름입니다. 남편에게 보이려던 아들이 장자가 됩니다.

2. 걸어간 길 — 한 줄로 끝난 사건

성경은 그 일을 아주 짧게 적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창 35:22)

설명도, 야곱의 반응도, 처벌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창 35:22) 한 마디로 끝납니다. 그런데 그 침묵이 삼십 년 넘게 갑니다. 야곱이 죽기 전 축복하는 자리에서 그 일이 다시 나옵니다.

르우벤에게 좋은 면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요셉을 죽이자는 형들을 말린 것이 그였고 (창 37:21-22), 나중에 베냐민을 데려가는 일에 자기 두 아들을 담보로 내놓기도 합니다 (창 42:37). 말은 늘 앞섰습니다.

3. 받은 말 — 위풍이 월등하다마는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창 49:3-4)

앞 절은 칭찬이고 뒤 절이 뒤집습니다. 「물의 끓음 같았은즉」(창 49:4) — 끓어올랐다 가라앉는 것, 형태를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이 앞서고 남는 것이 없던 사람에게 맞는 그림입니다.

모세의 축복은 더 짧습니다.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신 33:6)

다른 지파들이 사명과 복을 받는 자리에서, 르우벤이 받은 것은 살아 있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지파 축복 가운데 가장 낮은 자리의 말입니다.

4. 어긋난 자리 — 장자의 명분은 어디로 갔는가

역대상이 이 지파를 소개하면서 괄호로 사정을 밝힙니다.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대상 5:1)

그리고 곧바로 덧붙입니다.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대상 5:2)

장자권은 요셉에게, 주권은 유다에게 갈라져 갔습니다. 한 사람이 잃은 것을 두 사람이 나누어 받았습니다.

그다음 기록도 밝지 않습니다.

장면 내용 본문
광야 모세를 거스른 다단과 아비람이 르우벤 자손 민 16:1
요단 동편 가축 때문에 강 건너에 남기를 구함 민 32:1
드보라의 전쟁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삿 5:16) — 오지 않음 삿 5:16

드보라의 노래가 르우벤을 두 번 부릅니다.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삿 5:15·16). 결심은 컸는데 오지 않았습니다. 「물의 끓음 같았은즉」(창 49:4)이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5. 마지막 명단 — 그런데 두 번째로 불립니다

이 모든 기록에도 르우벤은 마지막 명단에서 유다 바로 다음에 불립니다(계 7:5). 에스겔의 회복된 땅에도 그의 몫이 있습니다(겔 48:6).

단 지파와 견주면 분명해집니다. 단은 둘째로 큰 지파였는데 명단에 없고, 르우벤은 장자권을 잃고 전쟁에도 오지 않았는데 둘째로 불립니다. 성경의 셈법이 우리 셈법과 다릅니다.

6. 이 문서의 정리

  • 잃은 것은 명분이지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장자권은 옮겨 갔으나 지파는 남았고,

마지막 명단에도 있습니다.

  • 야곱은 그를 지우지 않았습니다. 칭찬을 먼저 하고 나서 꺾습니다 —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창 49:3)가 먼저입니다. 실패한 아들에게도 그가 누구였는지를 말해 줍니다.
  • 모세의 한 줄(신 33:6)은 초라해 보이지만 저주가 아니라 기도입니다.

시므온에게는 그마저 없습니다(5편에서 다룹니다).

7. 남는 물음

  • 왜 처벌이 없었는가. 창 35:22는 사건만 적고 반응을 적지 않습니다. 야곱의 침묵이

묵인인지 미룸인지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 ‘큰 결심’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삿 5:15-16의 같은 구절이 두 번 되풀이됩니다.

강조인지 비꼼인지 번역과 주석이 갈립니다.

  • 명분과 이름의 차이. 잃어도 되는 것과 잃으면 끝인 것을 성경이 어떻게 나누는지,

이 지파가 한 사례가 됩니다.


성구는 개역개정이며 본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직접 가져왔습니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