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1:27-32 (배경 수 24:2; 행 7:2-4)
이 회의 낱말 · 하란 둘 — 아들은 하란(הָרָן), 도시는 하란(חָרָן). 첫 글자가 다른 낱말인데 한국어로는 같다
들어가며 — 같은 이름, 다른 낱말
창세기 11장에는 「하란」이 두 번 나오는데 서로 다릅니다. 하나는 데라의 아들이고, 하나는 도시입니다. 한국어로는 똑같이 적히지만 히브리어에서는 첫 글자가 다른 낱말입니다.
그래서 이 장을 읽으면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아들 하란은 우르에서 죽고, 아버지 데라는 도시 하란에서 죽습니다. 발음이 겹치는 두 죽음 사이에서 한 집안의 여정이 시작되고 멈춥니다.
1. 목적지를 말한 사람이 목적지에 닿지 못했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창 11:31)
이 한 절에 이 회의 전부가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떠난 주체가 데라라는 점입니다. 아브람이 아버지를 설득해 나온 것이 아니라, 성경은 데라가 아들과 손자와 며느리를 「데리고」 떠났다고 적습니다. 이주를 시작한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라고 목적지까지 밝힙니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장의 뒷부분이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로 끝납니다.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 창 11:32
성경이 그의 죽음을 굳이 「하란에서」라고 적은 것은 지리 정보가 아닙니다. 그 멈춤을 기록해 두는 것입니다.
2. 우상을 섬기던 집에서 시작된 부르심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배웠기 때문에 그 집안도 경건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여호수아는 그 짐작을 정면으로 깹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수 24:2)
여호수아가 이 말을 한 자리는 세겜의 언약 갱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너희 조상도 우상을 섬겼다」고 상기시킨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가정의 유산이 아니었습니다.
우르와 하란은 둘 다 달 신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데라는 떠났지만 같은 종류의 도시에서 멈췄습니다. 이것이 이 회의 가장 아픈 지점입니다 — 떠나는 것과 다른 곳에 도착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3. 동시대 조명 — 한 집안의 네 사람
하란은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습니다(창 11:28). 성경이 자녀의 죽음을 부모의 생전에 배치해 기록하는 첫 사례입니다. 그 아들이 남긴 아이가 롯입니다. 데라는 죽은 아들의 집을 버려 두지 않고 손자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나홀은 우르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자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 훗날 이삭의 아내 리브가와 야곱의 아내들이 그 집에서 나옵니다. 남은 자의 집이 계보의 신부를 공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롯이 있습니다. 그는 삼촌과 함께 끝까지 갔지만, 결국 소돔을 택합니다. 같은 길을 걸었어도 각자 멈추는 자리가 달랐습니다. 데라는 하란에서, 롯은 소돔에서, 아브라함은 장막에서 멈췄습니다.
4. 사람의 이주와 하나님의 이끄심
여기서 성경의 표현이 겹치는 것을 보십시오. 창세기 11장은 우르를 떠난 주체를 데라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같은 사건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 창 15:7
「내가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사람의 눈에는 노인의 이주였고 하나님의 눈에는 부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데라의 결정을 취소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일하셨습니다.
스데반은 그 다음 걸음의 시점을 정확히 짚습니다 —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행 7:4).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것은 아버지가 죽은 뒤였습니다. 머무름은 한 세대 만에 끝났습니다.
5. 그리스도를 향하여 — 순종은 출발이 아니라 걸음입니다
히브리서가 아브라함을 칭찬할 때 고른 말이 데라와의 대조를 만듭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 히 11:8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데라는 갈 바를 알았고 멈췄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모르고 나아갔습니다. 성경이 믿음이라 부르는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걸음의 방향입니다.
그리고 이 대조는 계보 전체를 관통합니다. 계보를 이어받은 사람은 언제나 한 걸음 더 간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에 계보의 끝에 서신 분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자기 땅에 오셨으나」 머물지 않고 십자가까지 가신 분입니다. 순종의 완성은 도착이었습니다.
이번 회의 자리
데라의 띠가 연표의 마지막에 놓입니다. 창세기 11장의 나이를 이어 붙이면 그는 창조 후 1876년에 태어나 창조 후 2081년에 죽습니다 — 홍수(창조 후 1656년)로부터 220년 뒤에 태어난 것입니다. 아담이 930년을 살았는데 그는 그 넷 중 하나도 못 되는 세월을 삽니다. 나이는 짧아졌지만 계보는 끊기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눈에 담아 두십시오. 데라의 수명은 창세기 11장의 반복 문형에 들어 있지 않고 32절에 따로 적혀 있습니다. 그 문형이 데라에게서 끝난다는 뜻이고, 다음 장부터는 나이의 목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묵상 질문
- 관찰: 창세기 11:31에서 우르를 떠난 주체는 누구입니까? 창세기 15:7에서 같은 일을 말하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 해석: 데라가 목적지를 알고도 하란에 머문 것과, 하란이 우르처럼 달 신을 섬기던 도시였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어집니까?
- 적용: 제가 떠나기는 했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리가 있습니까? 지금 저의 「하란」 — 편안해서 멈춰 선 중간 지점은 무엇입니까?
다음 회 예고
8회 — 아브라함 ① 부르심: 복의 통로로 부르셨다
아버지가 죽은 뒤, 하란에 남아 있던 한 사람에게 음성이 임합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명령에는 목적지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이 전부입니다. 갈 바를 모르고 걷는 믿음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성구 인용은 개역개정이며 본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직접 가져왔습니다. 연표와 가계도는 창세기 5·11장의 나이를 계산해 그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