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38:27-30; 46:12 (배경 민수기 26:20-21; 룻기 4:12-19)
이 회의 낱말 · 톨레도트(תּוֹלְדוֹת) — 「계보」. 룻기 4:18이 이 낱말로 다윗을 향한 목록을 연다
들어가며 —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
시즌 1은 말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담이 변명하고, 노아가 저주하고, 아브라함이 흥정하고, 야곱이 씨름하며 이름을 물었습니다.
시즌 2는 다릅니다. 첫 사람 베레스는 성경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가 무엇을 믿었는지, 어디서 살았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남은 것은 태어난 장면 하나와, 두 아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다는 한 줄과, 그의 이름을 딴 종족이 있었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런데 왕의 계보는 바로 그에게서 이어집니다.
1. 순서를 뒤집고 나온 아이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가 끝나는 자리에서 쌍둥이가 태어납니다.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 창 38:27-30
산파는 이미 첫째를 정해 두었습니다. 손이 먼저 나오자 홍색 실을 매어 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손이 도로 들어가고 다른 아이가 밀고 나옵니다. 산파의 입에서 나온 말이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였고, 그 탄식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습니다.
표를 해 둔 아이가 세라 (유다의 아들)이고, 표 없이 밀고 나온 아이가 베레스입니다. 사람이 매어 둔 표시가 계보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2. 두 아들을 데리고 내려간 사람
베레스가 다시 나오는 곳은 야곱의 온 집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명단입니다.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창 46:12)
이 한 줄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베레스는 아버지가 되어 애굽으로 들어갑니다. 계보가 그 문턱을 넘을 때 이미 다음 고리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성경이 조용해집니다. 애굽에 머문 햇수를 출애굽기는 이렇게 적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 출 12:40
그 긴 세월을 건너는 이름은 넷뿐입니다 — 헤스론, 람, 암미나답, 나손. 네 사람으로 사백삼십 년을 채울 수 없습니다. 히브리 족보의 「낳고」는 반드시 아버지와 아들 한 대만을 뜻하지 않으며, 족보는 연대기가 아니라 계승의 목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회에서 물을 것은 「몇 대인가」가 아닙니다. 기록이 비어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입니다.
3. 비어 있는 동안 일어난 일
성경은 그 구간을 거의 비워 두었지만, 한 군데에서 결과를 보여 줍니다. 광야의 인구조사입니다.
유다 자손의 종족들은 이러하니 셀라에게서 난 셀라 종족과 베레스에게서 난 베레스 종족과 세라에게서 난 세라 종족이며 또 베레스 자손은 이러하니 헤스론에게서 난 헤스론 종족과 하물에게서 난 하물 종족이라 — 민 26:20-21
이름이 살아 있습니다. 「베레스 종족」과 「헤스론 종족」이 있습니다. 애굽에 들어갈 때 아버지와 두 아들이던 집이, 나올 때는 종족으로 불립니다.
기록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셨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노예의 세월에도 계보는 끊기지 않았고, 아무도 이름을 적어 주지 않는 동안에도 그 이름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대부분의 날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는 것과 지켜지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4. 동시대 조명 — 이름이 남은 두 가지 방식
같은 집안에서 같은 시기에, 하나님은 두 사람을 전혀 다르게 쓰셨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온 집안을 기근에서 건집니다. 그의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열네 장에 걸쳐 있고, 꿈과 옥과 궁정과 눈물이 다 적혀 있습니다. 계보를 살린 사람입니다.
베레스는 그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네 절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계보가 지나간 길은 그쪽이었습니다.
성경은 요셉을 낮추지 않습니다. 다만 구원의 계보가 가장 빛나는 사람을 통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열두 아들 중 이야기가 가장 긴 사람과, 계보를 이은 사람이 다릅니다.
아버지 유다에게서도 같은 것을 봅니다. 그는 동생을 은에 팔자고 말한 입으로 나중에 「내가 그 아이를 대신하여 종이 되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창 44:33). 그 변화의 한복판에 며느리 앞에서 진 일이 있었고, 베레스는 그 부끄러운 자리의 열매입니다.
5. 그리스도를 향하여 — 축복의 본보기가 된 집
세월이 흘러 베들레헴의 성문에서, 장로들이 한 남자를 축복합니다.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으려는 보아스였습니다. 그들이 든 본보기가 이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 룻 4:12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어머니의 이름까지 붙여 부릅니다. 감추지 않습니다. 성읍의 장로들이 복을 빌 때 기준으로 삼은 집이, 숨기고 싶었을 그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룻기는 마지막에 목록 하나를 펼치며 그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 룻 4: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여기서 열 이름이 다윗까지 이어지고, 마태는 그 이름을 그리스도의 족보 셋째 칸에 적습니다(마 1:3).
계보는 우리가 골랐을 사람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표를 매어 둔 손이 아니라 터뜨리고 나온 아이에게서, 이야기가 긴 사람이 아니라 한 마디도 남기지 않은 사람에게서, 자랑할 만한 집이 아니라 부끄러운 집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질문
- 관찰: 창세기 46:12과 민수기 26:20-21 사이에 성경이 적어 둔 베레스 집안의 기록은 무엇입니까?
- 해석: 성경은 왜 계보를 이은 사람의 생애를 이토록 적게 남겼을까요?
- 적용: 아무도 기록해 주지 않는 오늘 하루를 하나님이 지키고 계신다면, 제 태도는 무엇이 달라져야 합니까?
다음 회 예고
14회 — 나손: 광야 진영의 선두
계보의 이름이 처음으로 광야의 진영 앞에 섭니다. 그리고 그 집안에서 왕의 줄과 제사장의 줄이 갈립니다.
성구 인용은 개역개정이며 본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직접 가져왔습니다. 가계도는 성경이 밝힌 관계를 따라 그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