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여호수아 2:9-21; 6:22-25 (배경 마태복음 1:5; 히브리서 11:31)
이 회의 낱말 · 샤니(שָׁנִי) — 「홍색」. 창세기 38:28의 홍색 실과 여호수아 2:18의 붉은 줄이 같은 낱말이다
들어가며 — 아무 기록도 없는 사람과, 너무 많이 알려진 여인
구약에서 살몬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목록 한 줄뿐입니다. 나손이 그를 낳았고 그가 보아스를 낳았습니다(룻 4:20-21). 행적도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약이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마 1:5). 구약의 목록만 읽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가장 조용한 이름이 가장 뜻밖의 아내와 짝지어져 있습니다.
1. 성벽 위의 고백
두 정탐꾼이 여리고에 들어가 한 여인의 집에 묵습니다. 성경은 그의 직업을 감추지 않습니다 — 기생 라합입니다. 그가 정탐꾼을 숨기고 지붕에 올라가 한 말이 이것입니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 수 2:9-11
이 고백을 찬찬히 보십시오. 그는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홍해와 두 왕의 일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이 이것입니다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광야에서 사십 년을 원망한 세대가 하지 못한 말을, 무너질 성 안의 이방 여인이 합니다. 들은 것을 믿은 사람과, 보고도 믿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2. 붉은 줄
정탐꾼이 그에게 한 가지 표를 정해 줍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 수 2:18
창문에 붉은 줄을 매고 온 가족을 그 집에 모으라고 합니다. 그 표가 있는 집만 살아남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그 줄의 빛깔은 샤니인데, 같은 낱말이 시즌 2의 첫 회, 베레스 편에 이미 나왔습니다. 산파가 유다의 쌍둥이 중 먼저 나온 손에 홍색 실을 매던 장면입니다(창 38:28). 빛깔만 같은 것이 아니라 매다라는 동사까지 같습니다.
그런데 쓰임이 정반대입니다. 창세기에서 홍색 실은 계보를 잇지 못한 아이에게 매였습니다. 사람이 정한 표시는 빗나갔습니다. 여호수아에서 같은 빛깔의 줄은 살아남을 집에 매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표시는 빗나가지 않습니다.
3. 성이 무너진 뒤
여리고가 무너지고, 여호수아가 명령을 시행합니다.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 수 6:25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진멸의 땅에서 한 집이 남았고, 그 집이 이스라엘 안에 살게 되었습니다. 바깥에 두지 않고 안으로 들였습니다.
신약은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부릅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성경은 그의 과거를 지우지 않은 채 그를 믿음의 명단에 올립니다. 야고보도 같은 사람을 들어 행함을 말합니다(약 2:25).
히브리서가 그를 누구와 견주는지도 보십시오 —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입니다. 성 안의 다른 사람들도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들은 것은 같았고 믿은 사람만 달랐습니다.
4. 동시대 조명 — 살린 사람과 맞아들인 사람
여호수아는 그 세대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진멸의 명령을 받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라합의 가족을 살리라고 명령한 사람입니다. 명령에 순종하는 것과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에게서 부딪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호수아서에서 거기까지만 말합니다. 라합이 그다음 어떻게 되었는지는 적지 않습니다. 그 뒤를 마태가 한 구절로 밝힙니다 — 그는 살몬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살린 사람을, 살몬은 맞아들였습니다. 성을 무너뜨린 세대가 계보를 이은 세대이기도 했다는 것이 이 회의 요점입니다. 정복은 끝이 아니라 누구를 들이느냐의 시작이었습니다.
5. 그리스도를 향하여 — 표가 있는 집
붉은 줄이 매인 창문은 유월절 밤의 문설주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느 쪽이든 집 안에 있는 사람이 구원받는 근거는 그 사람의 자격이 아니라 밖에 걸린 표였습니다.
라합은 자기 과거를 지우고 계보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여호수아서에서도, 히브리서에서도, 야고보서에서도 그를 「기생 라합」이라 부릅니다. 그런데도 마태복음 첫 장, 그리스도의 족보에 그의 이름이 있습니다.
계보는 깨끗한 사람을 모아 만든 목록이 아니었습니다. 표가 있는 집을 지나온 목록입니다.
마태가 족보에 이름을 적은 여인은 넷입니다. 다말과 라합과 룻과 우리아의 아내입니다. 그중 둘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 라합이 낳은 아들이 룻을 아내로 맞습니다(마 1:5). 계보가 이방 여인을 한 번 들인 것이 예외였다면, 두 대 연속은 예외가 아닙니다. 그것이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의 끝에, 자기 백성만이 아니라 「모든 족속」을 부르시는 분이 오십니다.
묵상 질문
- 관찰: 여호수아 2:9-11에서 라합이 「들었다」고 말한 일들은 무엇입니까? 그가 직접 본 것은 무엇입니까?
- 해석: 성경은 왜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부르면서도 「기생」이라는 말을 끝까지 붙였을까요?
- 적용: 제가 공동체 안으로 들이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무엇이 저를 망설이게 합니까?
다음 회 예고
16회 — 보아스와 룻: 사사 시대의 어둠(사사기) 속 헤세드
사사들의 시대, 흉년이 든 베들레헴에서 한 집안이 떠납니다. 그리고 빈손으로 돌아온 여인 곁에 이방 며느리가 서 있습니다.
성구 인용은 개역개정이며 본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직접 가져왔습니다. 가계도는 성경이 밝힌 관계를 따라 그린 것입니다.
